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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학술활동> 학위논문 소개(2)

번호
 13
작성자
 박물관 학예연구실
작성일
 2013.04.12
조회수
 645

<학위논문 소개>

慶南 金海地域 墳墓出土 磁器 硏究, 강경연

 

제목 : 慶南 金海地域 墳墓出土 磁器 硏究

저자 : 강경연

학위 : 석사

발행기관 : 경남대학교

발행연도 : 201212

 

<목차>

. 머리말

1. 先行硏究檢討

2. 硏究對象方法

. 磁器 出土 墳墓遺蹟 槪觀

. 對象 墳墓檢討

1. 고려시대

2. 조선시대

. 분묘출토 자기류에 대한 분석

1. 기종의 분류기준

2. 속성분석의 기준

3. 유물의 시대별 형식설정

1) 고려시대

2) 조선시대

4. 명문자기에 대한 검토

. 시기성과 지역성

1. 시기성

2. 지역성

.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요약>

본 연구는 경남 김해지역에서 조사 된 고려·조선시대 분묘 출토 磁器를 대상으로 하며, 속성분석 및 형식분류를 통해 편년을 설정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김해지역은 기존의 발굴조사를 통해 분묘유적과 출토유물에 대한 자료가 꾸준히 축적되어있어 종합적인 분석 및 검토가 용이하다. 그리고 연구 성과가 부족한 지역에 대한 기초자료 및 연구성과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 분석은 김해지역 고려·조선시대 분묘유적 16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먼저 분묘의 형식, 유물의 부장위치, 의례행위 등을 통해 유구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또한 器種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시대에 따라 ··접시로 구분하여 형식분류를 시도하였다.

고려시대 분묘는 목관묘가 다수를 차지하며, 자기류는 두 곳에 나누어 부장하는 경향이 높다. 磁器는 중앙부를 제외한 측면에, 銅匙와 함께 부장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분묘도 목관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비교적 많은 묘에서 감실이 확인된다. 감실 내에서 부장품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류의 부장은 한 곳에만 시행한 것이 많다. 이와 같이 고려·조선시대 분묘는 자기류의 부장과 위치, 器物配置 등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분묘 출토 자기는 청자·분청사기·백자로 구분되며, 각각 형식분류 및 순서배열을 진행하였다. 시대와 器種에 따라 Ι~단계로 변화가 확인되며,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편년연구 및 성과를 바탕으로 각 단계별로 연대를 비정하였다. 단계는 출토된 청자 모두가 해당된다. 해무리굽 완과 같은 이른 시기의 유물이 관찰되지 않고 후기의 절요접시가 출토되는 점 등을 통해 12세기 전반~13세기로 편년하였다. ·단계는 분청사기가 출현하는 단계이다. 단계는 동체부가 곡선·절요의 형태를 띠고, 인화·상감·귀얄 등의 기법이 관찰된다. 또한 의미가 불분명한 ‘X’·공납용임을 말해주는 ·‘金海+長興庫用가 새겨진 명문이 확인된다. 문양 및 명문·기종의 외형적인 형식을 통해 분청사기 발전기(1432~1469년경)15세기 중반으로 설정하였다. 단계는 동체부가 직선적인 형태를 띠며, 대부분 귀얄기법이 사용되었다. 분청사기의 변화·쇠퇴기(1469~1510년경)15세기 말로 편년하였다. ·단계는 백자가 출현하는 단계이다. 단계는 15세기 말~16세기에 해당되며, 단계와 크게 시기차이를 가지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果方陰刻으로 새겨진 유물이 확인된다. 단계에는 金海上·點刻으로 새겨진 유물이 확인되며, 기형 및 명문의 시문 양상을 통해 16세기 중반~17세기로 파악하였다.

종합해 살펴보면, 자기가 출토되는 고려·조선시대 분묘는 완만한 사면부에 등고선과 직교하는 형태로 상호간의 중복관계 없이 조성되었다. 이는 집단의 공동묘역으로 이전에 조성된 분묘를 인지한 상태에서 후대의 분묘가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자기는 피장자가 일상생활 및 부장유물로 이용할 수 있는 경제력·사회적 위치에 있었음 증명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피장자는 경제력이 있는 양인 혹은 양반이상의 계층으로 볼 수 있다. 분묘출토 자기는 기종이나 기형을 통해 영남지방 내에서 특별히 다른 도자문화를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분청사기와 백자에 지역명을 새긴 명문이 확인되고, 인접한 일본에서 귀얄 분청사기를 주문했다는 점 등을 통해 김해지역 내에서의 자체적인 기반과 발전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