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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학술활동> 학위논문 소개(1)

번호
 12
작성자
 박물관 학예연구실
작성일
 2013.04.12
조회수
 661

<학위논문소개>

無文土器時代 松菊里文化檢丹里文化比較 硏究, 배길희

 

제목 : 無文土器時代 松菊里文化檢丹里文化比較 硏究

저자 : 배길희

학위 : 석사

발행기관 : 경남대학교

발행연도 : 201212

 

<목차>

. 머리말

1. 연구목적

2. 연구사 검토

1) 연구현황

2) 문제제기

3. 연구대상 및 방법

. 松菊里文化檢丹里文化分布圈

1. 분포권 설정

2. 관련유적검토

1) 송국리문화권

2) 검단리문화권

. 文化圈別 聚落立地住居形態

1. 송국리문화권

1) 입지

2) 유구

2. 검단리문화권

1) 입지

2) 유구

. 住居址를 통해 본 無文土器時代 中期 文化特徵

1.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공통점

2.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차이점

3.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특징

. 맺음말

參考文獻

ABSTRACT

 

<국문요약>

이 연구는 무문토기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문화인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주거지의 검토를 통해 두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무문토기시대 중기 문화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에 대한 연구는 개별 유구나 유물의 형식분류와 편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취락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동시기에 지역을 달리하며 형성된 두 문화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각 문화권에서만 확인되는 두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따라서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비교 검토를 통해 두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두 문화의 관계를 파악하는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먼저 송국리형주거지와 울산형주거지를 지표로 하여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분포권을 설정하였다. 송국리문화권은 경기이남지역,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태백산맥 이서지역을 분포권으로 가지며, 검단리문화권은 태백산맥 이동의 울산을 중심으로 한 경주, 포항일대의 동남해안지역에 한정되어 분포권을 가진다. 각 문화권별로 유적을 선별하여 주거지의 속성과 부속유구의 분석을 통해 취락의 구성 방식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송국리문화와 검단리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무문토기시대 중기 문화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송국리문화권에서는 주변에 크고 긴 강을 끼고 있는 높고 낮은 구릉이나 하천의 범람에 의해 형성된 비교적 넓은 평지에 유적이 입지한다. 검단리문화권에서는 강이 길지 않고 하폭이 좁아 평지 발달이 미약하여 주로 하천 주변은 낮은 구릉에 유적이 입지한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에 따라 송국리문화권에서는 전기의 역삼동문화에 새로운 문화가 강이나 해로를 통해 전파되면서 문화 접변의 결과로 송국리형주거지가 축조된다. 반면 검단리문화권에서는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서에서 동으로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흔암리유형의 주거형태가 중기까지 계승되면서 지형적 조건에 따라 벽구와 외부돌출구가 설치되는 형태로 변화한 울산형주거지가 축조된다. 두 유형의 주거지 모두 전기의 주거양식을 가진 집단이 필요에 의해 변화와 계승이라는 선택을 통해 주거지를 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 무문토기시대 중기 사회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세대공동체가 공동으로 식량을 소비하던 것에서 개별 가족 단위로 소비형태가 변하게 된다. 그 결과 세대공동체에서 개별 가족 단위로 가족체가 분화되고, 주거지도 세장방형의 대형 주거지에서 원형 또는 방형의 소형, 중형 주거지로 주거지의 크기가 축소된다. 그리고 주거지의 면적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확인되는데 이는 생산물을 공동으로 저장, 관리, 분배하는 계층과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는 의례를 담당하는 자가 등장하면서 상위계층과 일반계층으로 계층이 분화된 결과 주거지의 규모에 계층성이 반영되면서 사회적 규제를 통한 주거지의 규격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주거지의 구성 방식에 있어서 3가지 유형이 확인된다. 다수의 소형주거지로만 구성된 경우, 소형과 중형이 비슷하게 혼재되어 있는 경우, 소형과 중형 사이에 대형 1~2기가 포함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구성을 가진 주거지군은 구릉의 사면이나 능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되며 위치에 따라 군집을 이루고 있다. 대형 주거지는 전기와는 달리 취락 내에서 단독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거지의 위치와 주변 유구와의 관계, 내부 구조 등을 통해 주거를 위한 공간이 아닌 공공의 장소 또는 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볼 수 있다.

넷째, 취락은 주거공간을 기본적으로 가지면서 매장공간, 생산공간, 의례공간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공간들은 취락 내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송국리문화권에서는 공간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검단리문화권에서는 주거공간만으로 이루어진 주거중심취락이 다수를 차지한다. 송국리문화권에서는 특정 생산유구가 특정 취락에 밀집되어 있는 예가 있어 검단리문화권에 비해 분업화된 생산체계가 갖춰졌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무문토기시대 중기 사회는 농경을 기반으로 사회가 발전하여 점차 평등사회에서 복합사회로 나아가는 단계이다. 송국리문화권에서는 넓은 평지를 이용한 대규모의 밭농사가 중심이 되고, 검단리문화권에서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계단식 논농사가 중심을 이루었다. 또한 고랑과 이랑으로 구분된 밭과, 용수 확보를 위한 수리시설이 갖춰진 구획화 된 논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체계적인 농경 시스템을 갖춘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농경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증가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 내에서 계층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환호의 축조, 대규모의 경작지와 무덤군을 조성하고 유지하는데는 오랜 시간 노동력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상위계층의 권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과 함께 대규모의 정주취락이 형성되고 분업화된 생산체계, 사회적 규제가 반영된 주거형태 등으로 미루어 보아 전기의 평등사회에서 점차 복합사회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