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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사연구활동] 영산 사직단, 여단 지표조사

번호
 10
작성자
 박물관 학예연구실
작성일
 2013.04.12
조회수
 623


<영산 사직단, 여단 지표조사>

- 조사기간 : 2011. 12 ~ 2012. 2
- 의뢰기관 : 창녕군청
- 조사목적 : 창녕군 영산면은 조선시대 慶尙道 靈山縣으로, 邑治인 縣城을 비롯하여 鄕校, 祠廟 등을 갖춘 독자적인 행정기구였다. 지금의 영산면 관내 곳곳에는 읍성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시대 당시의 유적이나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社稷壇과 城隍祠, ?壇 등은 이름만 남긴 채 그 위치나 내력이 전혀 파악되어 있지 않아, 조선시대 당시 靈山縣의 경관과 삶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다소 소홀함이 있어 왔다.

급격한 도시화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인해 우리 전통사회의 基底가 되는 농업이 해체되고 지역문화의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있는 지금, 전통사회의 유산인 社稷壇과 여단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려고 하는 노력은 문화재의 가치만큼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라고 하겠다. 본 조사는 조선후기 지도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만 추정할 수 있는 靈山 社稷壇과 ?壇의 위치와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정밀지표조사로서,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보존, 관리케 함은 물론 향후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되게 하고자 한다. 이 조사결과는 향후 검토를 거쳐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시에는 시도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있어 기초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조사 결과 : 이번 지표조사에서는 조선시대의 몇몇 문헌기록과 고지도,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적도를 기초로 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사직단, 여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확인할 수는 있었으며, 社稷壇의 祭壇으로 추정되는 방형 돌출부는 확인되었으나 ?壇으로 볼 만한 인공적인 壇 시설은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향토사학자 등 마을 주민들 중에서 사직단이나 여단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분은 거의 없어 구체적인 정황은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창녕읍에 위치하는 사직단, 여단의 상태와 비교하면 영산 사직단과 여단은 입지나 여건이 같지 않다. 따라서 반드시 구릉 정상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상부에 단 시설이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영산의 경우 사직단은 독립된 구릉상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그 정점이 되는 지점은 아니다. 특히 여단은 영취산의 남쪽 기슭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곳은 독립된 小丘陵이 없어 그냥 산의 경사면에 위치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형태에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며, 여단의 壇 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점은 분묘 조성이나 산사면 개간 등의 이유로 후대에 교란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단은 그 자체가 매우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며 누구나 숨기고자 하는 은밀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 본 이 지역 주민이나 향토사학자 가운데 누구도 여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라 추측된다. 이번 조사에서 社稷壇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확인이 가능하였지만 .壇은 그 대략적인 장소를 확인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향후 기회가 되면 지표조사의 한계를 넘어 좀 더 적극적인 조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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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추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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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 추정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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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 추정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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